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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그룹 사보) 코닥과 후지필름의 엇갈린 운명

하나금융그룹 사보 Go Beyond 게재 컬럼

January 20, 2022

지난 몇 년간 산업의 경계가 급속도로 사라지거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들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업(業)의 경계를 넘어 세상 어느 분야와도 협업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시대, 기업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Innovation Story’의 첫 시간에는 한때 전 세계 카메라 시장을 양분했던 코닥과 후지필름이라는 두 기업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과제를 생각해봅니다.

글 조용호(더이노베이션랩㈜ 대표)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시장이 변했다

두 기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는 카메라 시장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니가 최초의 상용 디지털카메라인 마비카(Mavica)를 내놓던 1981년, 아마추어용 사진 시장은 142억 달러 정도였습니다. 당시 필름 제조에는 고난도의 기술이 들어가기 때문에 코닥, 후지, 아그파 정도의 극소수만 경쟁력 있는 필름을 생산해 낼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높은 진입장벽 덕분에 경쟁자도 적었고, 업계의 리더가 경제적 해자를 누릴 수 있는 시장이었던 거죠.

그런데 디지털카메라 중심의 시장에서는 이러한 해자가 더는 통하지 않게 됩니다. 수많은 경쟁자가 이미지 센서와 반도체 등을 외부에서 구매해 카메라 제조 시장에 뛰어들었고 가격 경쟁도 심해졌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찍은 사진을 인화하지 않고, 컴퓨터에 저장하거나 프린터로 인쇄하거나 SNS에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기간 쌓아 올린 필름 및 인화 관련 화학기술과 가맹점 네트워크가 무용지물이 된 셈입니다.

코닥은 디지털카메라로의 전환에 손을 놓고 있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도래할 것을 예측했고 변화에 대비했습니다. 미국 시장 점유율이 필름 90%, 카메라 85%에 이르던 1976년, 코닥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선보였으며 이후 디지털카메라 관련 연구개발에 많을 때는 년간 2조 원 이상을 지출했고, 연간 연구개발 예산의 60% 이상을 디지털 전환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부터는 필름 사업이 아닌 디지털 이미지 처리 부문에 올인 했고, 2005년에는 미국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한때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성과도 이뤘습니다.

문제는 코닥의 선택적 변화가 ‘카메라 산업’ 내에서만 이루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디지털은 업계의 차별점을 없앴으며 저가격·저수익의 상품구조와 시장 내 출혈 경쟁을 만들어 냈습니다. 실제로 코닥이 디지털카메라를 한 대 팔 때마다 60달러씩 손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2001년 노키아가 세계 최초로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전화를 내놓자 2년 만에 카메라폰의 판매량이 디지털카메라를 뛰어넘었습니다.

코닥은 자신이 집중한 디지털 사진 인화 사업이 계속 의미 있는 시장으로 남을 것을 기대했을 뿐, 2002년 페이스북의 등장으로 인화보다는 온라인 저장과 공유가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을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디지털 기업을 지향했으면서도 디지털카메라와 관련된 상당 부분을 OEM으로 외주화하면서 핵심 기술을 내재화할 기회마저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같은 상황, 다른 대응에 나선 후지필름

2000년경 코닥과 함께 필름 산업을 양분하고 있던 후지는 코닥과 비교적 비슷한 출발점에서 디지털카메라 시대를 맞았습니다. 다만 2003년 CEO로 부임하고 지금은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고모리 시게타카는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코닥과 달리 조직의 핵심역량과 연결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곳에 경영자원을 배분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빠르게 변신해 나갔습니다.

CEO 부임 전부터 회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전수 조사하고 해당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기존 및 신규 시장을 찾는 작업을 추진한 것입니다. 이후 후지는 필름 제조에 쓰이는 화학기술이 항산화, 콜라겐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안티에이징(Anti-aging) 화장품을 개발했고, 화학합성물에 대한 광범위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의약품 연구에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현재 기술과 미래 시장에 대한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눈여겨볼 부분은 모든 것을 조직 안에서 추진하기보다는 M&A(기업인수합병)와 JVC(조인트벤처)를 과감히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인 필름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마친 후지필름은 10년간 7조원을 투자하여 40여 개의 회사를 인수합니다. 의약품 분야에서는 2008년 도야마화학과 머크사(社)의 바이오 제약 사업 부문을, 화장품은 2007년 아스탈리프를, 광학렌즈 쪽으로는 내시경 시장 점유율 70%였던 올림푸스 지분을 인수한 것이죠. 또한, 액정패널용 필름을 주로 생산하는 후지택을 설립하여 현재 전 세계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했습니다.

코닥과 후지필름의 공통점

  • 디지털카메라 시장으로의 트렌드 변화를 예견
  • 변화에 맞춰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경영자원을 재배치
  • 위기 해소를 위해 연구개발에 투자(매출의 3~4% 이상)

코닥과 후지필름의 차이점

코닥

  • 디지털 기업으로의 전환
  • 카메라 산업 내에서만 활로 모색(전문집중화)
  • 트렌드의 장기적 전개 방향 예측 실패(디지털전환=기존 구조를 디지털화)
  • 디지털 이미지 처리에 집중하며 카메라 제조는 OEM으로 맡기는 등의 전략적 실수

후지필름

  • ‘본업에 충실한다’는 원칙 준수
  • 카메라 산업을 넘어선 활로 모색(관련 다각화)
  • 트렌드의 장기적 전개 방향 예측 성공 (디지털화의 장기영향=일상용품화+저마진화)
  • 핵심역량(기술)의 활용
  • 공격적 M&A와 시너지 모색
  • 조직 변화 과정에서의 굵고 짧은 고통을 선호

코닥과 후지필름의 미래를 바꾼 결정적인 차이

전통적인 카메라와 필름 시장이 2001년 정점을 찍은 이후 10년 동안 90%가 사라지는 가운데 후지필름의 절대적인 과제는 21세기에도 번영하고 영속하는 회사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지가 택한 길은 핵심역량과 연결된 새로운 길, 즉 ‘다각화’였습니다. 후지는 코닥과 달리 카메라 산업에 머물기를 고집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는 매우 큰 차이를 낳은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결국, 코닥 매출이 2000년 16.8조 원에서 2010년 8.6조원으로 48%가량 줄고 2012년 파산을 선언하는 사이, 후지의 매출은 동일 기간 14조에서 22조 수준으로 57%가 늘어났습니다. 더불어 핵심역량과 연결된 다양한 산업에서 경험과 실적을 쌓으며 이전보다 강건한 체력도 갖게 되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내수 중심의 사업 비중에서 탈피하여 해외 비중이 전체 매출의 60% 수준을 웃돌고 있습니다.

두 기업의 사례를 비추어 우리는 선택적 변화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업계에 디지털 바람이 불 때 그것이 의미하는 함의를 탐구하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근사한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입니다. 코닥은 기존 산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 역량과 무관한 영역에서까지 행동했다면, 후지는 역량과의 시너지를 포기하지 않되 산업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하며 구체적이면서 과감하게 실행했습니다.

오늘날 금융업계에 불어오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바람이 심상치 않습니다. 변화와 혁신의 기로에서 무엇을 바꾸고 바꾸지 않을 것인가. 우리의 선택으로 남는 하나의 질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글 조용호 더이노베이션랩㈜ 대표

더이노베이션랩을 운영하며 경영 컨설턴트 겸 이노베이션 코치로 10여 년간 기업 혁신 워크숍과 코칭을 진행해 왔습니다. 2013년 저서를 통해 빅블러(Big Blur) 개념을 처음 제시하였으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 혁신, 플랫폼 사업 전환, 신성장 사업 개발 등을 돕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플랫폼 전쟁>, <당신이 알던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 <비즈니스모델 젠> 등이 있습니다.